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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여름 일기

  • [SMU새마을뉴스]
  • 입력 2023-08-05 08:45
  • |
  • 수정 2023-08-0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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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를 달리 이르는 말로 경염庚炎 또는 경열庚熱이라고 하고, 초복 중복 말복 삼복三伏을 경복庚伏이라고 한다.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을 생각하니 더 더운 것 같다.

초딩 때, 학교가 파하면 한 동네 친구들이나 선후배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너끈한 오릿길을 걸어 집으로 온다.

땀 범벅이다.

집에 도착하여 가방을 마루에 팽개치듯 내던지고 대문을 빠져 나온다.

지금도 그 때 엄니의 외침,

“아가, 한입 싸고 가랑께!”

하신 말씀이 뒷꼭지에 아련하다.

점심 때 우리집 마루에서는, 늘쌍으로 엄니와 동네 아주머니 서너 분이 텃밭에서 딴 상추와 풋고추, 구수한 전통 된장으로 쌈을 하여 점심을 드셨다.

친구들은 멱 감으러 먼저 냇가로 갔을 것이다.

60년대,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농사가 주산업이었으므로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마을 근처에 몽리蒙利용 보洑[하천 유량 조절 수리 시설]가 있었다. 우리는 2미터 가량의 수문 위에 올라가 깊은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며 신나게 뛰놀았다. 물놀이 한 두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이 작은 보나 근처 큰 하천의 큰 보에서는 1년에 한 두명씩 물에 빠져 사고를 당한다.

사고가 날 적마다 아부지께서는 절대로 거기 가서 멱을 감으면 안된다고 훈계하셨다.

경열庚熱의 계절에 물가에서 놀지 말라는 엄친의 당부 말씀은 한창 놀 나이의 아이들에겐 별로 효과가 없었다.

친구들과 특히 명배 사촌형과 함께 아부지 몰래 숱하게 갔었다. 세살 터울 남동생은 따라 오겠다고 떼를 쓴다. 나는 거절한다. 동생과 함께 갈 때에는 내가 맘대로 놀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에서 한 눈 팔다가 동생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안되기 때문이다.

동생의 간절한 요청을 외면하고 동네 골목길로 냅다 달음박질하여 달려 나가면, 동생은 울면서 -사실은 자지러지면서- 내 뒤를 따라 달려온다. 마음이 무겁다.

어찌 동생을 남겨 두고 혼자 멱감으러 갈 것인가. 나는 동생의 멱감는 재미를 빼앗을 권리가 없다.

되돌아서 동생에게 간다.

지긋이 동생 손을 잡고 명배형이 기다리는 점방 삼거리로 종종걸음친다.

동생의 울음은 뚝 그친다. 눈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ㅎㅎ 그때도 이미 알았지만 수십년이 지나도록 우리 둘만의 비밀로간직하고 싶다.

어떤 날, 서너시간을 징허게 멱감으며 놀고 들어 갈 때에, 너무 많이 놀아 아부지께 야단 맞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멱 감은 일을 아부지께 숨기려고 얼굴에 길 가의 흙분을 발랐다.

이 방법을 써서 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촌형의 경험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흙가루를 얼굴에 바르면 무사히 넘어갈 것이라는 권유에 의해서다. 오랜 시간 물에 담근 쭈글쭈글하긴 하지만 윤기가 탱탱한 얼굴에 더러운 길바닥의 흙가루를 긁어 모아 빈틈없이 발랐다.

그러나 어찌 가부家父의 눈을 속일 수 있었겠는가. 금세 들통나고 말았다.

''이 녀석이 또 멱 감았구나!''

가엄家嚴[아부지]께서는 그에 대한 벌로 나를 대형 수건으로 기둥에 묶어 놓으셨다.

“나 올 때까지 꼼짝말고 반성하고 있어!”

나는 성장하는 동안 두 형님을 통하여 깨달은 지혜가 하나 있다. 자식의 어떤 행동에 아버지가 매를 드시고 안드시는지를.

나는 결코 매를 맞고 싶지 않았다. 아부지께서 좋아 하실만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단 한 대의 매도 맞지 않고 자랐다. 두 형님의 무언의 가르침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신 모범행동(?)에 감사드린다. 흐~

아부지의 사랑의 교훈적 벌은 불과 10여분 만에 끝났다.

부엌에서 나오신 자친慈親[엄니]께서

''먼 일이다냐.''

하시면서 기둥에 허술하게 묶인 자식을 간단히 풀어줌으로써, 엄니의 바다보다 큰 사랑으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요즘같은 폭서暴暑에는, 지금 살고 있는 주변 냇가나 호수, 계곡 물을 보면 '풍덩!'하고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든다.

☯

老菜/묵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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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배 기자 rexc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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