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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보다 생명이다

  • [SMU새마을뉴스]
  • 입력 2023-08-21 14:25
  • |
  • 수정 2023-08-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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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견딜 수 없사오나 치욕恥辱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 영화 『南漢山城』 최명길의 대사 중에서 -
이 말은 이 세상 만고의 진리인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유학자, 선비의 입장에서 명예를 침범 당하는 일이 가장 나쁜 일인 것 같으나, 사실 이조판서 최명길은 가장 치욕스러운 일은 생명을 빼앗기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가치관이었고 나라가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목숨 걸고 간諫한 충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치욕이라는 말은 공문십철孔門十哲인 유자有子[자유子有]의 입에서 최초로 이 세상에 토해졌습니다. 유자는 기원전 518년 ~ 429년 사이의 삶을 살았던 철학자였습니다. 외모가 공자와 가장 많이 닮아 선생 사후에 그를 존숭하려는 사람들로 문밖이 시끌벅적하였습니다.
‘믿음이 의로움에 가깝다면 말이 이행될 수 있다. 공손함이 예에 가깝다면 치욕은 멀리할 수 있다.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 친함을 잃지 않으면 역시 높이 살 수 있다.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논어》 학이편.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史記』을 집필한 사마천일 것입니다. 사마천司馬遷은 장군이자 친구였던 이릉李陵이 흉노에 항복한 것을 두둔했다 하여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즉시 사형 당하니까요. 이것이 ‘이릉의 화 李陵之禍’입니다.
당시 태사령太史令이었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통사通史를 기록하라」는 유언遺言에 따라, 38세에 아버지의 직책을 계승하여 태사령이 되어 대작을 남겼습니다.
사마천의 경우를 최명길도 잘 알고 있으리란 추측은 가능합니다. 살아남아야 가문의 엄중한 사명이었던 사관史官의 직무에 충실하여 대역사서를 완성할 수 있을테니까요.
창랑滄浪은 칼바람이 부는 남한산성 성곽에 서서 사마천의 경우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살아 남아야 나라도 살아 남을 수 있고 복수도 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에게 있어서 치욕은 생명보다 가벼운 일이었습니다. 홍타이지가 가한 치욕과 조정 강경파의 모욕을 동시에 견디는 일은, 그저 생명보다는 가벼운 일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치욕적인 일을 겪고 난 사마천은,
‘수신修身이란 지혜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고,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仁의 실마리이며, 사람이 치욕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용감한지를 보여준다. 修身者智之符也 愛施者仁之端也, 耻辱者 勇之决也.’ -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
에서 선비와 치욕의 적확的確한 정의를 남겼고 또 죽음의 쓰임새에 대하여도 간명하게 설파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시 한번은 죽는다.
어떤 이의 죽음은 태산보다 엄중하고
어떤 이의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의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也.’
우리는 삼전도의 비극 이후 척화斥和의 삼학사三學士를 칭송하고 주화론자主和論者를 수치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나랏일이 어찌 한 사상의 테두리에 한정되어 다스려지겠습니까.
가정해 본다면, 당시에 척화파의 주장대로 결사 항전을 감행했더라면 아마 조선은 사라지고 한반도는 중국화되었을 것입니다.
균형과 대칭은 예술작품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이는 차분함, 안정감, 형식감을 부여합니다. 특히 배경의 건물과 아치가 대칭을 이루는 방식은 매우 안정감을 줍니다. 코르푸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같은 고대 그리스 신전은 엄격하게 대칭적입니다.
우리는 근세 들어 ‘역사의 균형 감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이나 로봇의 자세 제어 메커니즘처럼, 역사에 있어서도 올바른 자세, 균형감각은 필요합니다.
우리는 대한제국 시기에 심한 불균형을 야기하여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 국치를 겪었습니다. 당시의 균형감각 상실은, 몇 집안의 임금을 능멸하는 세도 정치, 양반 수 증가, 백성을 위하지 않은 정책, 산문물 배척 등이었지요.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이웃집 사람이 아프면 찾아가 위로하는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의 아픔을 틈 타 안방에 들어와 누나와 여동생을 겁탈하고 형과 남동생을 도륙하였으며, 안방 장롱 속 어머니의 패물과 1천여년간 보관한 고서나 역사책, 보물을 강탈하고, 곳간의 양식을 훔쳐갔습니다.
일본 문화의 클라이맥스는 ‘아름다운 죽음’으로 미화되는 죽음입니다. ‘목숨 걸고 일하고 죽음은 가볍게!’라는 슬로건은 일본인의 가치관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지진이 빈번한 일본이란 땅은, 방금까지도 팔팔하게 살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시체로 변해 버리는 일을 수도 없이 목격합니다. 죽음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자연적 배경을 가진 민족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눈부시게 만개한 벚꽃을 보면서도 죽음을 생각합니다. 일본 고유의 짧은 시인 하이쿠[俳句]의 한 구절이 일본인의 심성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사쿠라가 만발할 때 술 한 잔 들고 사쿠라가 질 때 함께 죽노라!”
사무라이의 명예는 확고투철합니다.
‘배를 주릴망정 명예에 죽고 사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는 사무라이 문화, 칼의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일본인의 마음에 여러 가지로 변용되어 나타납니다.
재벌가가 부정을 저지르거나 대재난 발생 시에 공무원의 잘못이 드러날 때에는 어김없이 간부 한명이 모든 책임을 지고 죽음을 택합니다.
한편, 일본인의 부끄러움은 무사들을 용감하게 만들었고, 명예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게 만든 수치의 문화도 존재합니다. 일본만의 특징은 부끄러움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극한의 정서에 있습니다. 무사가 명예스럽게 사는 길은 ‘수치를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면 차라리 스스로 배를 가르는 ‘하라키리〔腹’切り〕를 택했습니다.
최명길의 생각 저 편에, 일본인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가 드러내 보이는 것보다 그가 감추고 있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은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참다운 지혜입니다.
장자는 말합니다.
‘위대한 사랑[仁]은 사랑하지 않는 듯하며, 위대한 청렴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위대한 용기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
《대학》을 저술한 공자의 손자 자사는 군자[선비]를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나를 닦고 타인을 편안하게 한다'
선비의 정의가 이렇게 적확的確합니다. 이미 2천5백년 전에 정의한 인간의 고귀한 사유思惟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한국의 선비가 인류의 빛이라는 것을. 선비가 가진 덕목, 그 가치는 부서지지 않는 견고하고 거대한 바윗돌이면서도, 때로는 플렉시블한 고무처럼 연성이라는 것을.
현대인의 몰가치는 배금사상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top이 자행하는 대악大惡은, 다른 수많은 소악을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老菜聽乭/ 묵은지, 돌처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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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배 기자 rexc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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