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삶을 배당한다! 긍정에너지 전달기업 ㈜성환공구 김미경대표
성공 삶을 배당한다! 긍정에너지 전달기업 ㈜성환공구 김미경대표.수만 가지 기계 부품과 공구들의 길을 안내하는 긍정에너지 전달기업 ㈜성환공구 김미경대표. 그는 조그마한 공구상회로 시작, 공구와 기계부품 유통 기업으로 성장시켜 수많은 기업들의 든든한 다리가 되어 대한민국 제조업을 간접 지원하고 있다.
수만 가지 기계 부품과 공구들의 길을 안내하는 긍정에너지 전달기업 ㈜성환공구 김미경대표. 그는 조그마한 공구상회로 시작, 공구와 기계부품 유통 기업으로 성장시켜 수많은 기업들의 든든한 다리가 되어 대한민국 제조업을 간접 지원하고 있다. 조금 거창한 소개 같지만 사실이다. 아무리 거창한 기계도 작은 부품 하나가 없다면 그 기계는 고철에 불과하다. 기계를 살아 있게 유지시키며 공구와 부품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한다. 그들의 언어를 지휘하는 부품 공구 대모 김미경 대표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주)성환공구 김미경대표 그녀는 강원도 안흥에서 3남1녀의 장녀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엔 원주로 5학년 때엔 서울로 이사했다. 모두가 어려웠던 그 시절엔 성적이 우수해야 상고에 갈 수 있었다. 장녀로써의 책임감이 남달랐던 그는 일치감치 대학은 접고 상고 졸업 후 어머니를 돕기 위해 취직을 했다. 첫 직장으로 백화점에 취직했다. “당시 저는 백화점의 불이 켜지기 전에 그 층에서 항상 먼저 출근을 했고 회사의 높은 분 순찰 때 마다 제가 있는 거죠. 그렇게 눈에 띄어 백화점의 요직인 비서실로 가게 됐어요. 2년여의 시간이 지나 부서 선택의 기회가 생겨 특판 과에 갔는데 다들 목소리도 좋으니 판촉과에 가면 방송도 하고 편할 텐데 왜 특판 과를 가냐 말렸지만 전 특판 과에 갔지요. 일은 다소 힘들었어도 그 부서에서 많은 것을 얻었어요.” “그곳엔 남자 분들이 많았고 당시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분들께 받은 도움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라며 말 하는 그의 표정에서 성실함과 일에 대한 철학, 사람을 좋아하는 따뜻한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일을 즐겼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 캐리어 우먼도 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결혼을 하면 사회는 인재 하나를 잃는다.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 생활 10년이 지날 쯤, 공구상 10여년 근무 경험을 살려 창업을 하자는 남편의 말에 경기도 병점에서 공구상을 열었다. 그 때가 2000년쯤 이었다. 남편과 직소기로 나무도 자르고 타카도 쏘며 공구상을 직접 꾸몄다. 그렇게 시작한 공구상 운영 10년, 점점 제조업이 팽창해가는 화성으로(2009년)공구상을 이전 했다. “사업이 나름 자리가 잡힐 즈음 저의 재능을 알았는지 10년 노하우를 실험 해보라며 남편은 사랑한 기억과 무수한 추억을 남기고 나를 영원히 떠났지요.” 참으로 고마운 사람, 야속한 사람, 미안한 사람인 그는 기약도 없이 나를 떠났어요. 지금은 그 시간들이 다양한 이름을 지닌 추억으로 마음속에 있지만 나는 슬퍼할 겨를도, 아파할 기력도 없었습니다. “ 그런 현실에 아파하는 건, 그녀에겐 사치였다. 자녀 둘을 혼자 키워야 하고, 자신을 부양해야 하고, 남편이 두고 간 회사에 전념하며 시간과 타협을 했다. 다른 곳을 바라볼 겨를이 없었다. 아니, 슬픔을 이기려면 내 마음의 다양한 감성에 자물쇠를 채워야했다. 그런 노력 때문이었는지 성환공구를 만나면 사업이 술술 풀린다는 회사들이 점점 많아 졌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거래처의 필요에 따라 전화 한통이면 필요한 물품들이 곧바로 배달되는 퀵 시스템을 갖추어 나갔다. 공구판매에서 기업 맞춤 공구 구매대행 서비스로 기업 운영 시스템을 전환 하게 된 것이다. 현재는 OEM으로 제품을 생산도 하며 업체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며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기간 중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다. “‘도전과 나눔 포럼’의 이금룡 회장님 강의에서 A급만이 A급을 알아본다는 말은 내게 큰 자극이 되었고 그 말은 저를 세차게 때렸어요. 당시 직원들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직원을 제가 뽑았잖아요. 제 안목이 문제였던 거죠. 내가 A급이 돼야 A급 직원도 채용하고 A급 회사를 만들 수 있으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2000년에 시작한 사업으로 줄곧 일만 하고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회사 집, 회사 집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였지요. 그때가 2017년 이었는데 그때 비로소 항상 걸려있었던 화성경제인포럼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어요. 화성상공회의소에 당장 가입을 했고,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지요. 배운 지식들을 적용했고 그것은 나를 발전시켰고 회사가 가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 참에 창업으로 휴학했던 방통대 행정학과에 재입학 하고 경영학과로 전과하여 졸업하였어요. 그리고 이순신포럼, 경영인인문학습원, 화성상공회의소 여성 최고경영자과정, 행복한경영대학 등에서 다양한 교육을 듣게 되었습니다. “ 그 기간 중 김 대표는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데드라인을 치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다. 목표 중 50세에 3층 자가 건물을 짓겠다는 데드라인을 쳤는데 49세에 아담한 3층 사옥을 짓는 목표를 이뤘다. 이후 김 대표는 이루고 싶은 목표들에 데드라인 정하고 목표를 향해 길을 걸었다. 많은 자기개발서를 읽었고, 책을 통해 자신을 자극하고 동기부여를 해 나갔다. 상상으로 많은 일들에 도전했고 목표가 정해지면 일을 저질렀다.”그때를 생각하면 이 일을 정말 내가 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무모해 보였다. 저는 늘 소심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어떤 면에서 참 강심장인 것 같아요. 예전에 나라면 꿈도 못 꿀 일들을 이루고 이젠 조금 편하게 일을 즐기며 직원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하며 하루하루 재미있게 보내고 있어요. “. 책속의 길을 소개하는 김미경대표 책속의 길을 따라 직원 복지의 그림도 그렸다. 엄마의 마음으로 내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을 직원들한테 해주려고 노력했어요. 생일쿠폰, 계절쿠폰 등 다양한 선물 꾸러미 제공과 자기개발을 위한 기간 휴가제, 차량 지급 등 대기업만큼은 아니어도 목표를 이루면 스스로 얻어가는 목표 수당, 출산 축하금, 입학 축하금, 자녀의 학년만큼 올라가는 급여 등 기업복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단체의 기부금도 늘려 나가고 있다. 도소매인 일의 특성상 토요일 휴무가 쉽지 않은데 2022년부터는 토요 휴무제도 시작했다. ”모든 결정들을 혼자해야 할 때 외로움을 느끼지만 이젠 아이들이 함께 고민도 해주고 엄마의 어깨를 잡아줘서 이렇게 웃고 있네요. “ 현재 대학을 졸업한 두 자녀가 직장 경험을 마치고 함께 일하며 가업을 잇고 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계산된 기억들이 아이들의 머릿속으로 경험을 통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2,3년 쯤 지나면 많은 자유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득 지나간 사진첩을 보다가 발견한 내 모습에서 가족들이 자신에게 준 따뜻함과 사랑이 오늘 이라는 김 대표의 미래는 없다. 오직 오늘이 있을 뿐이다. 계산된 오늘이 내일을 만들고 내일은 또 그날의 일들이 웃음으로 고개를 내밀 것이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삶을 배당하며 웃음으로 마음을 열고, 작지만 큰 울림으로 소통하며 매일을 여는 김 대표의 성환 공구가 대한민국의 한 곳을 지키는 든든한 기업으로 세상을 환히 밝히길 바란다. 성공엔 절대 우연이 없다. 한 사람의 성공의 이유를 만나보며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게 해준 김미경 대표께 감사드린다.
새마을뉴스 이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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